저는 정수 대표가 맞춤법을 틀리고서도 의연할 때 기묘한 쾌감을 느낍니다.
실수가 스스로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아는 사람의 태도 때문에요. 저는 실수의 ㅅ만 마주해도 손가락 새로 땀이 채는 인간이거든요. 그런 저에게 ‘실수는 본질이 아니다’라고 외치는 정수 대표의 호탕한 성격은 추구미이자 영원한, 도달 불가능의 영역입니다.
제 실수담도 하나 풀어볼까요. 저는 첫 직장으로 신문사를 다녔어요. 온라인 기사를 쓰는 일이 주 업무였는데요. 트래픽을 위해서 해외 기사 중에서 국내 네티즌이 좋아할 만한 기사를 골라 번역하곤 했죠. 그날은 한 노부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번역했어요. 기사 내용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이 담긴 중요한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. 그 앞 어두에 “Voila”라는 말이 있었어요.
챗GPT가 없던 시절, 네이버 파파고가 있었죠. 1차적으로 파파고의 힘을 빌렸는데, 이 친구가 Voila를 ‘보일라’라고 번역한 거예요. 기사에는 노부부의 성만 있었고,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아서 저는 남편이 아내를 부르는 애칭인 줄 알았어요. 그래서 그것을 수정하지 않고, 보.일.라. 라고 써서 기사를 제출했죠. 퇴근길에 기사 댓글이 달린 거예요.
“Voila는 보일라가 아니라 여봐, 하고 부르는 말입니다. 기자가 찾아보지도 않고 썼네 ㅉㅉ”
그 댓글을 읽고, 지하철에 오르려고 서 있다가 그대로 열차를 못 타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. 저에게 기사를 바로 고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어요. 퇴근 시간이 지나 부서에서 가장 높은 분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. 지금 같은 배포였으면 ‘걍 내일 출근해서 고치지 뭐~’ 하거나 아예 신경도 안 썼을 텐데요. 그 당시에는 그게 정말 미친 실수처럼 느껴졌어요. 저 뒤에 붙은 ㅉㅉ이 진짜 혀를 차는 소리가 되어 제 귀에 들렸다니까요.
결국 부장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수정을 요청드렸고, 제가 듣기에 심드렁했던 그 반응도 기억이 납니다. 어찌저찌 고쳐졌죠. 고쳐지기까지 새로고침을 수백번을 하고요.
저는 그 실수가 왜 그렇게 뼈에 사무치듯 괴로웠을까요? 지금 와서는 Boila인지, Vola였는지도 헷갈리는데 말이에요. 가만히 그 날로 돌아가보면 ‘실수 하나가 저를 전부 대변할 수도 있다’라는 생각에 위축된 사회초년생이 서 있습니다. 그때보다 어른이 된 지금에도 실수 구덩이에 빠질까 불안에 떠는 저를 발견할 때가 많아요. 저 같은 불안이들, 많으시죠? 모두 정수 대표 같지는 않죠?
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 어떤 실수라도 후일에는 ‘썰’이 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.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제가 보일라를 쓰든 보일러를 쓰든 아무도 기억 못할 테니까요. 지금 이 글을 읽은 여러분도 5년 뒤에는 다 잊어버리게 되고, 언젠가는 다들 죽으니까……(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극단적인 표현 송구합니다)
그럼 제법 용감해집니다. 인간이니까 실수하고, 인간이니까 잊습니다. 괜찮아요... 우리... (밤새 내 머리를 채우는 과거의 실수들을 조용히 묻으며…) 괜찮겠죠? 괜히 가슴을 부풀리며 따라 외쳐봅니다. 이미 벌어진 것을 우째! |